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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영화 이야기

써로게이트(Surrogate), 그 놀라운 상상력을 말하다.


   

써로게이트
감독 조나단 모스토우 (2009 / 미국)
출연 브루스 윌리스, 라다 미첼, 로저문드 파이크, 빙 라메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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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위드블로그에서 베스트글로 선정되었습니다.>

매트릭스, 터미네이터, 마이너리티 리포트, 아일랜드...... 이 영화들이 없었다면 과연 이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가능이나 했을까?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이 영화가 앞서 언급한 영화들에 대한 속편쯤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 영화의 상상력은 앞서 언급한 영화들이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었던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지요.

 

물론 이 영화 속 상상력이란, 앞선 영화들의 상상력과 연장선에 있는 것이기는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상상력도, 앞선 영화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는 것만은 아니었지요. 이 영화의 상상력은 앞선 영화들보다 충분히 진보하였다 평가받을 만한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Surrogate = 대리인, 대행자

sur·ro·gate n.
1영국국교】 (banns 없이 결혼 허가를 주는주교 대리;종교 재판소 판사 대리
2 《》 유언 검인(檢認) 판사
3 대리대행자(deputy)
4정신의학】 대리인 《무의식 에서 부모를 대신하는 권위자
5 =SURROGATE MOTHER
 a 대리의;대용
 [vt.
1 … 대리 노릇을 하다;… 대리로 임명하다;자기 후임으로 지명하다;대용하다
2】 =SUBROGATE


앞선 영화들 속에서 '로봇(기계)과 인간의 관계'는 서로 대립적인 관계에 있다 할 수 있습니다.(여기서 로봇이 나오지 않는 일부 영화는 제하도록 하겠습니다. ^^) 하지만 이 영화 속에서 '로봇과 인간의 관계'는, 서로 대립적 관계가 아닌 상보적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이전 영화 속의 로봇들은 인간의 하인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에 불과하지만, 이 영화 속의 로봇들은 인간을 대리하거나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전의 영화 속에 등장했던 로봇들에 비해 매우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로봇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전의 로봇은 일종의 노예에 불과하여 그들의 지능이 개발될수록 인간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 영화의 로봇들은 인격은 사람이 가지고 있고 육체만 로봇이 대신하므로, 인간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없으니까 말이죠. 따라서 이 영화는 이전의 영화들과 달리 인간과 로봇 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이전의 영화 중에서 인간과 로봇의 갈등을 다루지 않은 영화가 있었던가 생각해보면, 제 기억엔 처음이 아닌가 싶군요.

 

저는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충분히 진보하였다 평가받을 수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의 로봇은 여지껏 제시되었던 로봇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로봇, 현실적으로 개발되면 좋을 로봇처럼 느껴지는군요. 

 

 

 

어쨌건 인간은 이러한 대리인(Surrogate)을 토대로 늙어도 젊은이로 분하여 살아갈 수 있게 되었고, 키가 작거나 혹은 못 생겨도 멋진이 또는 예쁜이로 분하여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리에 누워 뇌파를 조정할 힘만 있으면, 건강한 젊은이로 분해 얼마든지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전쟁이나 위험이 따르는 경찰 업무에서 조차 마치 게임 속에서 플레이하듯, 총에 맞으면 다른 로봇에 옮겨 타며 전투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실질적인 인명 손상은 일어나지 않게 되었으며, 범죄율 역시 급감하게 됩니다. 진정한 유토피아가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지요.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서로게이트입니다. 조종자는 누워서 게임하듯 전투를 즐깁니다. 전투 수행 중 사망하여도 상관 없습니다. 생명이 끊어지는 것은 아니니 말이지요.>

 

하지만 이에는 당연히 부작용이 따릅니다. 언제나고 젊음을 갈구하는 인간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혹은 병약해지면 질수록 로봇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면대면의 직접적인 관계보다는 로봇을 통한 간접적인 관계를 선호되게 되고, 이는 만남의 진정성 결여와 가족구성원 해체를 불러오게 됩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는 여기에 있습니다. 분명 이 영화 속의 로봇은 매우 현실적이고 이상적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로봇조차 인간성을 파괴할 수 있음을 고발합니다. 이전의 영화들이 인간과 로봇의 갈등을 경고하였다면, 이 영화는 로봇으로 인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 즉 '비인간화'를 경고하고 있는 것이죠.  

 

어쩌면 '비인간화'는 벌써부터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인지도 모릅니다. 이미 우리는 인터넷의 익명성을 이용하여, 마치 영화 속에서 로봇을 통해 새로운 인격을 누리듯, 다른 사람인양 행동하고 있고, 뇌파를 인위적으로 조정하여 이성과 감성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횡행하는 악플이나 채팅으로 인한 사회 문제라던가, MC스퀘어 혹은 아이도저(I-Dodger)로 뇌파를 조정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면 쉽게 오버랩되지 않을까 생각되는군요.

 

<침대에 누워 뇌파를 사용하여 서로게이트를 조종하는 이용자의 모습입니다.>

 

영화를 망친 것은 배급사의 카피 문구?

 

앞서도 언급한 바, 이 영화는 진일보한 상상력을 선보이고 있는 작품입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높은 평가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다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각종 포털사이트의 영화 평점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좋은 평을 얻고 있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아마도 다음과 같이 풀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1. 화끈한 액션을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2. SF라 하지만 현재 오늘날의 우리 사회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럼 도대체 왜 이런 평을 받게 되었을까요? 어쩌면 이는 배급사의 카피 문구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올 추석, 단 하나의 초대형 SF 블록버스터, 인류의 재탄생을 위한 전쟁이 시작된다."

 

어떻습니까? 충분히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 하지 않은가요. '초대형 SF'라 하니 당연히 미래 사회를 다루고 있으리라 여길 수밖에 없고, '전쟁이 시작된다.'고 하니, 액션을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런 문구로 인해 관객들은 박진감 넘치는 액션 영화나 미래사회를 그린 본격 SF 영화를 기대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왕년의 액션스타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을 맡았다는 점도 이러한 오해에 한 몫 하였겠지요. 하지만, 로봇을 다룬 영화라 하여 아주 먼 미래의 모습을 그릴 필요는 없고, 연로한 브루스 윌리스가 계속해서 액션을 찍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주 먼 미래를 다루고 있다 하더라도, 영화 속처럼, 오늘날 우리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고, 환갑을 앞 둔 브루스 윌리스도 여러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거듭나야 할테니 말이지요. 

 

'기대한만큼 실망하게 된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그렇게 기대하게 하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어쩌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 노릇이니 말이죠.


시나리오 상의 모순

 

이 영화의 평점이 낮게 나오는 것을 '배급사의 낚시'에만 원인을 둘 수만은 없습니다. 시나리오의 비약이나 모순 또한 여러군데서 발견됩니다. 

 

1) 창조자의 자가당착

 

어느 위대한 과학자에 의해 로봇이 창조되면서 인류 역사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 되게 됩니다. 그런데 난감하게도 이 위대한 창조자는 이 위대한 역사를 단절시키고 원래대로 되돌리려 합니다. 만약 그가 창조해 낸 창조물이 인류에 크나큰 해악을 끼쳤다면, 당연히 그는 이를 어떻게든 폐기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인류에 범한 죄를 속죄하려는, 양심있는 개발자로 평가받아야 마땅하겠지요. 하지만 그가 창조해낸 써로게이트는 많은 이용자들이 만족하며 사용하는 중이었고, 인류의 98%가 사용할만큼 생필품화 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그가 써로게이트를 다시 거두어들이고자 하는 바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 불과합니다. 그가 공동 설립자로 있던 회사에서 해고 당한 것이 주요 동기인 것인 것이죠. 해고에 대한 악감정으로, 그는 또 다른 서로게이트를 사용하여 마치 인류의 예언자인마냥 '휴머니즘'을 무기로 인간을 선동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실패하자, 그는 결국 중앙통제 시스템을 사용하여 써로게이트를 중단시키려고까지 합니다.

 

써로게이트 발명 이후 최초로 일어났다는 살인사건도 결국은 이 창조자가 아들을 죽인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자기 아들을 죽인 것이지요. 아무리 아버지와 떨어져 어머니와 함께 살아온 아들이라 하지만 공감을 얻어내기엔 힘들어 보이는군요.

 

이렇게 너무나 개인적인 이유로 사회 시스템을 망가뜨리려는 것은, 창조자가 갖는 일반적인 정서라 하기엔 지나치게 즉흥적이고 극단적입니다. 어떤 분야의 창조자든 간에 자신이 만든 시스템에(그것이 옳든 그르든) 대해선 무조건적인 애착을 갖기 마련일 테니까 말이지요.

 

<기계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예언자입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이 사람이 창조자가 분한 서로게이트이더군요. 결국 창조자는영화 속에서 4개 이상의 서로게이트를 사용합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4개 이상을 한꺼번에 돌리려면 쉽지 않았겠군요.>

 

2) 독재보다 더 심한 인권탄압

 

이 영화는 '휴머니즘'에 대해 자각한 브루스 윌리스가, 중앙통제시스템을 사용하여 전세계의 써로게이트의 작동을 중단시킴으로서 귀결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앙통제시스템은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앞서도 언급한 바, 써로게이트는 스스로가 행동의 주체가 아니라 인간이 행동의 주체이기 때문에, 굳이 중앙통제시스템을 갖추면서까지 써로게이트를 통제할 필요가 없습니다. 잘못을 하면 써로게이트가 아닌 인간이 잘못을 하는 것이니까 말이죠. 그렇다면 이러한 통제 시스템을 갖춘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무시한 처사라 할 수 있습니다. 소위 독재정권보다 더 심한 인권 탄압을 하고 있다 하여도 무리가 아니지요.

 

영화 속에서도 여주인공 역시 시스템 담당자가 써로게이트들을 통제하는 것을 알게된 후 매우 당황해 합니다. 그러자 시스템 담당자는 '나는 양심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정의 실현을 위해서만 사용한다.'고 이야기를 하지요. 하지만, 그 역시 훗날 어떤 사람이 될런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손 치더라도, 그의 손 끝에 인류의 운명이 좌지우지 되고 있는 것이니 말이지요.

 

쉽게 말해, 전세계의 자동차를 버튼 하나로 사용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해봅시다. 이게 말이 되는지요?

 

<중앙통제센터를 운영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서로게이트를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유는 인간의 뇌가 기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건데요. 서로게이트는 어차피 인간의 뇌파로 움직여지는 것인데, 어떻게 기계가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인지 알 수 없군요.>

 

3) 천편일률적인 아쉬운 결말

 

미래사회를 다룬 SF물들은 대체로 어떤 결론을 이끌어 내려고만 합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결론이 아쉽습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도교의 무위자연 내지는 허무주의 마냥, '열심히 로봇을 만들어 인류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는데, 이제 와 보니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다.'라는 식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괜히 만들었다.'라는 결론에 다름 아닙니다. 미래의 일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결론을 종잡기 힘든 면이 있고, 그리고 기술 발전에 대한 두려움의 측면도 있을 수 있지만, 오지도 않은 불안감을 벌써부터 조장하는 것은 모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럴꺼면 차라리 영화 속에서 미래 사회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서로게이트를 사용하여 영원한 젊을 누릴 수도 사랑을 나눌 수도 있습니다.>

 

마치며

 

진일보한 상상력에 몹시도 감탄하면서도, 엉성한 시나리오 탓에 아쉬워 한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배급사의 낚시질로 인해 그 놀라운 상상력까지 폄훼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써로게이트를 사용한 브루스 윌리스를 통해 그의 젊은 시절을 다시금 볼 수 있었던 것은 나름 의미가 있었습니다. 잠깐이지만 다이하드 때처럼 뛰어다니던 그의 모습도 과거 액션스타의 재림마냥 흥미롭더군요.

 

<서로게이트로 인해 젊은 시절로 돌아간 브루스 윌리스>

 

감독은 핸콕과 터미네이터3를 연출하였던 조나단 모스토우 감독이었습니다. 위대한 역작 터미네이터를 그저 그런 영화로 만들어버린 감독이었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이 영화는 상당부분 진일보했다 여겨지는군요. 터미네이터3를 감독하였던 분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영화를 보러 가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본인에게는 상당히 주홍글씨가 될 듯 합니다.) 하지만 시나리오 상의 미스들을 제외하고는 이 영화의 연출력은 괜찮은 편이었다 봅니다. 특히 초반부의 서로게이트의 발전사를 빠른 속도로 플래쉬백하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 영화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상상력만으로도 한 번쯤 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영화들의 상상력이 이 영화를 낳았듯 이 영화의 상상력은 또 어떤 상상력을 낳을지 귀추가 주목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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