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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영화 이야기

프로포즈

프로포즈
감독 앤 플레쳐 (2009 / 미국)
출연 산드라 블록, 라이언 레이놀즈, 베티 화이트, 크레이그 T. 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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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로맨틱 코미디류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탓에 그다지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지만,(이상하게 이런 부류의 영화는 포스터만 봐도 알겠더라구요.) 무료 티켓 만료가 다 되어가는 지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근래 한 인기 한다 하는 영화들은 이미 다 관람하였거든요. 시간이 맞으면서 볼 게 없을까 뒤적이다가 부득불 '프로포즈'를 골랐습니다. 하지만 제목부터, 포스터부터, 그리 끌리지는 않더군요.

 

이 작품, 일전에 보았던 다른 영화들과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특히 마녀라 불리며 부하직원들을 혹독하게 대하는 모습은 마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산드라 블록편인 것만 같았고, 티격태격 하던 커플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사랑을 하게 된다는 스토리도 로맨틱 코메디물에서 자주 보이는 진부한 내용일 따름이었습니다.

 

 

스토리의 비약이 너무 심하여 개연성이 떨어지기까지도 하였습니다. 아주 권위적이어서 마녀라 불리는 직장상사라하지만, 갑작스레 결혼을 하자는 제안에 남자는 너무나도 쉽게 응하더군요. 그것도 남자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아주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이유 때문인데도 말입니다. 금방 이혼을 해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혼을 먼저 생각하는 결혼치고는 대가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승진이 대가가 아니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승진만이 결혼의 대가라 하기엔 남자가 가진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아무리 본인이 직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고는 하지만, 그를 위해 아무런 상관도 없는 부하를 즉흥적으로 결혼 상대자로 삼는다는 것 또한  제가 지금껏 보아온 여자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평범한 회사원인 줄 알았던 남자가 알고보니 부잣집 도련님이더라는 설정도 너무나 뜬금 없습니다. 영화의 볼거리를 풍부하게 하려는 의도였겠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니다 싶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갑자기 떠나버리는 것도 서구인의 사고에서는 일반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또 하객의 대다수가 신랑측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일어나기 힘든 일일 것입니다. 둘의 사랑을 이어주기 위한 할머니의 연기도 자신의 손자가 일방적으로 이용 당했다는 것을 알게된 조모의 태도라 보기 어려웠고, 기껏 며칠 함께 지냈다고 엊그제까지 비난하던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는 설정도 앞뒤가 안맞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볼 만했습니다. 단점들을 상쇄할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지요. 다른 로맨틱 코미디와는 차별화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분명 흔해빠진 이야기인 건 맞는데 재미가 있었습니다. 뻔한 골격이지만 살을 잘 붙혀놓은 것이지요.

 

차별화의 근간은 연기력이었습니다. 히로인인 산드라 블럭은 까탈스러울 때 까탈스럽고, 약해보일 때 약해보일 줄 아는 연기자였습니다. 힘을 줘야 할 때와 힘을 빼야할 때를 극단적인 변화 없이 너무나도 자연스레 소화해내었습니다. 남자 배우의 연기력 또한 일품이어서, 부하직원일 때는 수동적인 모습으로, 남자 친구일 때는 능동적으로 절묘하게 변해 주었습니다. 특히 감초역할을 하고 있는 배우는 적재적소, 포인트 역할에 충실해 주어, 별다른 유머의 코드가 없는 씬에서 조차 그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유발해 내었습니다.

 

 

다른 영화를 많이 따라한 영화이기는 합니다만, 각각의 영화가 가지고 있던 성공방정식들을 잘 버무려낸 듯 합니다. 적재적소에 웃음의 코드들을 잘 삽입하였고, 알라스카의 아름다운 경관을 잘 묘사해낸 것도 같습니다. 시간 때우기 식의 용도라면 충분히 권할 만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