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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영화 이야기

[리뷰] 애자(2) - 애자라는 이름의 역설법과 단점의 극복

   


이 글은 앞 선, '[리뷰] 애자(1) - 모순과 역설의 변주곡으로 딸의 가치를 말하다.에서 계속되는 글입니다. 앞 글을 먼저 보시려면 클릭하세요.



애자라는 이름의 명명법




이 영화의 카피 문구 중 하나는 "내 이름 가지고 놀리면 디진다."이다. 이는 '애자'라는 이름이 '장애자'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단순한 극중 인물의 이름이 이 작품의 제목에까지 사용되었다는 것은 그 속에 뭔가 깊은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렇다면 이는 과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통상의 경우를 떠올려 보면, '애자'의 '애'자는 '사랑할 애'자이고, '자'자는 통상 여자 이름에 많이 쓰이는 '아들 자'자일 확률이 높다. 그런데, 딸과 아들에 관련된 영화에서 딸의 이름에 '아들 자'자가 쓰이고 있다니, 이는 상당히 주목할만 하다. 


여기서 '자'자는 통상 아들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사람이름, 특히 여자 이름에 사용될 때는 '사람을 가리키는 통칭'으로 풀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자'자를 '아들'로 보면 '사랑하는 아들', 혹은 '사랑받는 아들'로 풀이가 될 것이고,'자'자를 '사람'으로 보면 '사랑하는 사람', 혹은 '사랑받는 사람'으로 풀이가 될 것이다.


'자'자를 '아들'로 본다면, 이는 결국 엄마는 딸이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는 아들을 사랑한다.'고 딸에게 선포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는 딸의 비극적 운명을 나타내는 다름 아니다. 그런데 '자'자를 '사람'으로 보게 되면, 결국은 '사랑하는 아들보다 더 사랑받게 되는 사람은 딸'이라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그렇다. 이 영화에서의 '애자'라는 이름은 아들보다 다음 취급 당하는 딸의 사회적 운명을 가리키는 동시에, 결국은 아들보다 더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딸의 실제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제목 역시 모순의 미학, 역설의 구조를 가진 이름으로 풀이될 수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지루함.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 영화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대부분의 한국 영화들은 플롯 중심이 아닌 스토리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대체로 지루하고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물론 최근의 한국 영화들은 이러한 경향로부터 많이 벗어나고 있지만, 아쉽게도 이 영화는 이러한 경향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그다지 지루하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한국인의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를 다루고 있기에,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부분도 공감과 긍정 속에서 진행될 수 있다. 

 

둘째, 웃음의 코드가 될만함 에피소드들을 절묘하게 삽입하였다. 이는 애자의 캐릭터가 천방지축 혹은 4차원 소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겠지만, 애자의 4차원적 기행이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을 유발하였다.

 

셋째, 음악의 힘을 들 수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칭찬하고 싶은 것이 음악이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영화의 편집이 먼저 이루어지고 그 후에 영화음악이 삽입된다. 다시 말해 영화가 주이고 음악은 부의 역할을 하는지라 영화의 지휘 아래 음악이 따라간다. 그런데 이 영화는 주와 부가 뒤바뀐 듯한 느낌이 들고, 음악이 영화를 지휘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이것이 다소 지루한 영화 구성에 리듬감과 생기를 불어 넣는다 .



 


최강희의, 최강희에 의한, 최강희를 위한 영화

 

최강희가 아니었다면 어느 배우가 이 역을 소화할 수 있었을까? 이 역에 있어 최강희가 아닌 다른 배우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최강희는 4차원적 매력으로는 소위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배우다. 앞서도 언급한 바 있는 카피 문구로는 이 영화가 최강희의 티켓파워에 의존하고 있다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일개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만해도 그렇다. 영화의 주제는 어머니와 딸의 애틋한 사랑이지만, 포스터만 보면 최강희의 재기발랄함이 부각되는 작품으로 여겨질 정도다. 실제 이 영화를 관람한 관객 중 상당수는 어쩌면 최강희의 이러한 매력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을런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최강희는 관객들의 이러한 기대를 완벽하게 부응해낸다. 그리고 최강희는 이 영화를 통해 플러스 알파까지 얻어내고야 만다. 4차원적 매력에 따뜻한 마음씨까지 표현해낼 수 있는 배우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킨 것이다. 이로써 그녀는 더 다양한 배역을 맡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아들에 대한 엄마의 마음 - 마더와 애자를 통한 일반화

 

이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마더'와 빗댈만도 하다. 물론 '애자'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고, '마더'는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도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부각시키기 위해, 그 상대편인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끌고 들어 온다. 이 두 작품에 나오는 아들에 대한 엄마의 인식은 놀랄만큼 공통적이다. 두 작품의 엄마들은 모두 극성스럽다. 이러하다는 것은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사회적 차원으로 일반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는 '극성'이라는 코드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캐스팅을 잘했을까? 너무나 닮은 모녀

 

앞서 최강희라는 배우와 애자라는 배역의 궁합을 언급한 바가 있다. 너무나 적역이었다. 그런데 두 모녀, 친모녀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만큼 많이 닮아 있었다. 다음 사진을 보면 이러함은 극명해진다.


 


어떤가? 정말 친모녀라 해도 믿어질 정도다. 물론 어머니가 조금 더 이쁜 거 같긴 하다. ^^;;

 


부산은 왜?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부산이다. 그런데, 왜 부산일까? 이 영화는 굳이 부산을 배경으로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영화다. 도리어 한국인의 보편성에 초점을 두었다면,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 더 나았을런지도 모른다. 지역색을 띰으로 인해 분명 잃을 것이 있다. 감독이나 작가의 고향이 부산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만 부산국제영화제(PIFF)와 관련이 있어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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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9940 by foomtsuruhashi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우리 사회에서 딸의 가치를 말하다.

 

이 작품은 모순과 역설의 변주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딸의 가치를 말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남아선호사상의 잔재 아래 폄하되고 있는 딸의 가치를 모순과 역설의 기법을 사용하여 더욱 끌어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억지 모순을 통한 신파의 재현이라던가,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하는 지루한 구성은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이라 하겠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를 자극한다는 점, 음악을 통한 리듬감의 부여, 최강희의 4차원적 매력을 통한 웃음유발은 이러한 단점을 최소화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였었다. 아쉬운 부분들이 좀 더 보완이 되었더라면, 아마도 이 작품은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더욱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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