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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영화 이야기

블랙

 
블랙
감독 산제이 릴라 반살리 (2005 / 인도)
출연 아미타브 밧찬, 라니 무커르지, 아예샤 카푸르, 쉐나즈 파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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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이 제자에게 처음 가르친 단어 'Water'>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장애아가 스승을 만나 세상에 눈을 뜨고 결국 대학을 졸업하게 된다는 이야기..... 이야기의 골격만 놓고보면 전형적인 휴먼스토리의 모습, 그 자체일 따름입니다. 이렇게만 놓고보면 책으로만 접했던 논픽션 헬렌켈러를, 다른 피부색 배우의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과 다를 바가 없는데요. 그러나, 이 작품이 그토록 많은 이들의 호평을 이끌어 내는 것은 단지 이 작품이 휴먼스토리이기 때문만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대학 졸업식에서 졸업사를 하는 주인공>

  각설해서 잠깐 다른 이야기를 좀 해보도록 하죠. 저는 이 영화를 보고서 인도에 대해 알지 못했던 2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인도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는 것인데요. 어쩌면 이는 저의 지극히 무지의 소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 '시계지리' 시간에 배우기로는, 인도는 다언어 국가라 국가 발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정도라 들었었습니다. 그래서 인도 영화가 영어로 만들어질 줄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네요. 하기사 가만 생각해보면, 인도가 '볼리우드'라 불릴 정도로 수준 높은 영화를 많이 제작한다 하니, 공용어 정립은 영화가 먼저였든 언어가 먼저였든,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끌고 갔었겠지요. 더군다나 제국주의 시절, 인도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으니 여러모로 영어가 공용어로 정착되기엔 유리하였겠습니다. 시대적으로 영어가 득세하기도 하였구요. 이런 상황들을 고려하면, 그동안 인도가 노벨문학상 작가들을 많이 배출한 것도 언어적인 영향이 있었다 볼 수도 있겠군요.

  두번째로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인도에도 눈이 내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웬지 인도는 더운 나라라는 인상이 강해 눈과는 좀 거리가 있어보였었는데요. 아마도 인도하면 겐지스강에서 빨래하는 모습이 떠오르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겠습니다. 여튼 인도인들이 눈을 맞는 모습은 상당히 신선하게 느껴졌었지요.

 <인도에도 눈이 내린다>

  그럼 다시 원론으로 돌아와 보죠. 이 영화가 단순한 휴먼스토리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스승이 제자에게 일방적인 사랑을 베푸는 관계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상호보완의 관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처음에 스승은 제자에게 일방적으로 베푸는 입장이지만, 훗날 스승이 알츠하이머병(일명 치매라고도 하죠.)에 걸리게 되자 도리어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스승을 가르치게 되거든요. 스승이 제자를 가르쳤던 그 방식대로 말입니다. 장애를 가진 제자가 치매에 걸린 스승을 가르치는 이 장면..... 이 장면이야 말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안타깝게 하고, 이 영화를 보는 많은 분들이 눈물을 글썽이게 하는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영화 속엔 매우 인상적인 대사가 있었습니다. "인생은 아이스크림이다. 빨리 먹지 않으면 금방 녹아 없어지고 말 것이다."라는 대사인데요. 저는 이 대사를 접하는 순간, 영화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할정도이더군요. 짧은 순간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대사였습니다.

윤주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은 녹기 전에 먹어야 한다!>

  덧붙혀 생각해 보자면, 인생에는 각 나이대별로 맛볼 수 있는 아이스크림이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나이를 더 먹으면 못먹을 아이스크림이 분명 있는 것이죠. 어쩌면 얼마 남지 않았을 '청춘.....' '청춘'이란 아이스크림이 더 녹기 전에, 녹아 흐르는 아이스크림일지언정, 얼른 핥아 먹어야겠습니다.


  대화체로 쓰는 것도 생각보다는 괜찮군요. 읽으시는 분들이 좀 더 친근감을 느끼실런 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