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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영화 이야기

시간여행자의 아내, 스릴러를 방불케 하는, 연인들을 위한 멜로 영화

   


시간여행자의 아내
감독 로베르트 슈벤트케 (2009 / 미국)
출연 에릭 바나, 레이첼 맥아덤즈, 론 리빙스턴, 제인 맥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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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추석이 영화판의 대목이라더니, 작품의 퀄러티만 보면 10월 마지막주가 대목인 듯 싶다. <디스트릭트9>, <파주>,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그리고 이 작품 <시간 여행자의 아내>까지, 어느 하나 관심을 가지지 않을 영화가 없다. 그 덕에 11월초는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니라 참으로 바쁜 시기가 될 것 같지만, 나는 그 속에서 너무나도 행복해 할 것임을 직감한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이미 소설로 그 명성이 자자했던 작품이기도 하고, 후술하겠지만 작품 알아 볼 줄 아는 배우 '브래드 피트'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라 더 없이 기대한 작품이기도 하였다. 물론 사랑의 감정에 한창 굶주려 있던 탓에,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며 간접 체험이라도 해야겠다 마음 먹고 있는 참이기도 하였다.


 

영화는 제목처럼 '시간 여행을 하는 사람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였다. 대부분의 시간 여행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시간 여행을 하는 당사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이 영화는 그 당사자가 아닌, 그 '아내'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사실 제목만 봤을 때는, 어딘가 엉뚱한 것이 '값싼 코믹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제목과 달리 이 작품은 '매우 진지한 본격 멜로물'이고 또한 '멜로'로서의 성과 또한 매우 뛰어나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디스트릭트9>과 더불어, 2009년 하반기 최고의 영화라 하여도 손색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그런지, 지금부터 이 영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분석해 보도록 하자.


<줄거리>

우연히 일어난 교통사고로 소년은 어머니를 잃고,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시간여행을 하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시간 여행에 곤란해 하지만, 유독 여행을 할 때마다 어느 한 소녀와 자꾸만 마주치고, 소녀는 남자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낀다. 훗날 그녀는 실제 시간 속의 그와 만나 진정한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들은 결국 결혼을 하게 되는데..... (아래 줄거리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회색 글씨 처리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정작 필요한 순간마다 '시간 여행'을 떠나버리는 그에게 그녀는 자꾸만 실망을 하게 된다. 둘 사이의 아이(태아)조차 유전적 원인으로 유산하고 말자, 그녀는 심한 괴로움에 몸서리 치고, 부인의 괴로움을 보다 못한 그는 입양을 제안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그 제안을 받아드리지 않는다. 급기야 그는 불임 수술을 받아 그녀의 고통을 줄여주려 하지만 그들의 다툼만 커져갈 뿐이고, 모성에 대한 본능으로 그녀는 결국 시간 여행을 온 또다른 그와 만나 다시금 아이를 갖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딸아이를 출산하는데 성공하게 되고, 딸아이 역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딸 아이가 5살 되던 해, 그가 사망하게 됨을 알게 된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그는 결국 죽음을 맞이 하게 되고 그녀는 몹시도 슬퍼하지만, 과거 속의 그는 이따금씩 미래로 찾아와 딸아이와 그녀를 바라보며 영원한 사랑을 이어간다.

 

 

떨어져 지내는 커플들, 특히 군대 간 연인들을 위한 영화

 

이 영화는 '주말 부부'나 '장거리 연애 커플' 혹은 '바쁜 직장인 커플' 등과 같이, 떨어져 지내거나 자주 볼 수 없는 연인이라면, 반드시 보라 권하고 싶은 영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자 친구가 군대에 가 있는 연인'이라면 무조건 보아야 한다 말하고 싶은 영화다. 이러한 커플들은 서로 자주 볼 수 없기에, 늘 자신들의 처지를 아쉬워 하고, 또 이것을 핑계 삼아 헤어지기까지 하지만, 이 영화 속의 두 남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 속의 두 남녀는 앞서 언급한 커플들보다 자주 보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랑은 오래토록 변치 않으며, 끝끝내 운명적인 사랑을 이루어내고야 만다. 그러기에, 이러한 커플들은 이 영화를 통해 상대적으로 위안을 가질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이 사랑을 완성해내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들의 모습을 반성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비로소 자신들도 '운명적인 사랑'을 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커플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상당 부분 '감정이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를 통해 더욱 돈독한 사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집 나간 며느리(?)도 되돌아 오게 하는 영화

 

이 영화의 '감정이입'은 비단 떨어져 지내는 커플에 국한되지만은 않는다. 사랑을 해본 적이 있거나 헤어진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영화를 보고 과거에 그 상대방이었던 사람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이는 이 영화가 '연애가 만들어 내는 모든 과정들'을 담아내고 있다는 데서 기인한다. 연애는 통상, 소위 콩깍지가 씌이게 된다는 '이상적 단계', 콩깍지가 벗겨지며 깨닫게 되는 '현실 인식 단계', 그리고 '이별 혹은 결혼' 단계로 이루어진다 할 수 있는데, 이 영화는 이러한 연애의 전 과정을 거의 그대로 담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언급하자면, 영화의 초반부가 '이상적 단계'를, 중반부가 '현실 인식 단계'를, 후반부가 '이별 혹은 결혼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그럼 다음을 보자.

 

< 영화 초반부 = 이상적 단계 >

영화의 초반부에서 시간 여행을 떠나온 '헨리'와 어린 '클레어'는 아주 가끔씩만 만날 수 있었다. 시간 여행을 통해 우연히 만나는 것이기에, 자주 만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짧은 만남에서도 클레어는 그에게서 운명적 사랑을 느끼고, 그만을 사랑하며, 현실 속에서 그를 만날 날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녀는 드디어 현실 속의 그와 만나 뜨거운 사랑에 빠진 후, 결국 결혼하기에 이러른다. 

이는 앞서 언급한 <이상적 단계>와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하겠다. 이 단계에서는 소위 콩깍지가 씌어져 있기 때문에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상대방의 단점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있어 자주 볼 수 있고, 못 보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영화 중반부 = 현실 인식 단계>

중반부에서 '헨리'와 '클레어'는 서서히 콩깍지가 벗겨지며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이른바 '현실 인식 단계'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클레어'가 꿈꿔오던 신혼 여행에서 조차, 그는 결혼 반지를 남긴 채 사라지고, 함께 보내길 고대해 마지 않았던 '크리스마스 시즌'조차 2주 동안 '시간 여행'을 떠나 홀로 지내게 만든다. '헨리'가 원해서 시간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클레어'는 '헨리'에게 투정을 부리기 일쑤다. 여기에 그와 그녀 사이에 생긴 아이마저 시간 여행을 떠나(유전적 요인으로) 유산하게 되자, 그들의 다툼은 극에 달한다. 

따라서 이 영화의 중반부는 둘 사이의 콩깍지가 벗겨지는 '현실 인식 단계'를 다루고 있다 하겠다. 이 단계에서는 영화에서 보듯, 많은 다툼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이 과정을 얼마나 슬기롭게 보내느냐에 따라, '이별 단계로 가느냐?, 결혼 단계로 가느냐?'가 결정된다. 


 

<영화 후반부 = 이별? 혹은 결혼? 단계>

영화의 후반부에서 '헨리'는 죽음을 맞는다. 이에 '클레어'는 몹시도 슬퍼하고, 이로써 그들은 영원한 이별을 맞는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죽음이 갈라놓은 둘의 사이를, 늘 그들의 사랑을 가로 막는다 생각했던 '시간 여행'이 다시 이어 놓기 때문이다. 단점이라 생각했던 그것이 장점으로 다시금 거듭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그들의 사랑은 죽음조차 갈라놓을 수 없는 '영원한 사랑'으로 거듭날 수 있었으며, 이는 결국 '운명적 사랑'을 완성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헨리'의 죽음은 실제 연애의 '이별' 단계와 관련지을 수 있고, 역시나 애매하지만, '그들의 재회'는 '결혼' 단계와 관련지을 수 있다 하겠다. '죽음'은 헤어지는 것이므로 그렇고, '그들의 재회'는 '사랑의 완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음 표를 보게 되면, 이것이 더 분명해 지리라고 본다. 

 영화의 위치 영화 속 구성 실제 연애 
전반부 시간 여행을 통한 로맨스
산 사람을 기다림
영원한 운명적 사랑을 약속
연애 초반과 일치
콩깍지가 씌어지는 단계
 
중반부 현실 인식
현실에 대한 고통 실감 - 시간 여행으로 인한 외로움, 유산
다툼과 싸움
연애 중반과 일치
콩깍지가 벗겨지는 단계
후반부  헨리의 죽음
시간 여행을 통한 재회 - 극적 반전
죽은 사람을 기다림
운명적 사랑의 완성
연애 후반과 일치
이별 혹은 결혼 단계

모든  연애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콩깍지가 씌이는 단계와 벗겨지는 단계'를 거치기 마련이다. 이는 모든 연애가 처음처럼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누구보다 사랑하던 이들이 헤어졌다면, 그것은 이상이 현실로 바뀌게 되는 길목에서,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현실인식단계'를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헤어진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화의 초반부와 중반부의 '사랑'과 '다툼'에 상당부분 '감정 이입'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별한 사람들은 후반부의 그들과 같이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가을철의 전어 마냥, '헤어진 커플들'을 다시 화해하게 하는 영화가 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후반부에 펼쳐지는 장면들은, 그들이 못다 이룬 사랑을 다시 완성하고 싶게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원치 않는 시간 여행'이라는, 둘 사이의 한계라 여겨졌던 그것이 '영원한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가교가 되는 것처럼, 이별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 도리어, 영원한 사랑으로 가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릴러 영화야? 멜로 영화야?


반전의 점층법

사람들에게 스릴러 영화의 재미를 묻는다면, 그 중 대부분은 십중팔구 '반전의 묘미'를 꼽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멜로 영화이지만, 스릴러의 공식 중 하나인 '반전의 묘미'를 이 속에 잘 버무려내는데 성공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반전들'을 모아서, 눈덩이 같은 '큰 반전'으로 거듭나게 하는데, 이러한 반전 속에 사랑의 감정을 잘 용해해 내었다. 

이러한 반전을 잘 활용하여, 감독은 관객들을 마음껏 가지고 논다. 긴장시켰다가, 안도시켰다가, 울렸다가, 웃겼다가 하며, 관객들을 광대손에 들리어진 꼭두각시 인형마냥 만들어 버리고 만다. 이 중 '작은 반전'이 '결혼식'과 '임신'의 반전이라 하겠고, '큰 반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죽음과 재회'의 반전이라 하겠다.

1) 결혼식

본인의 의사와 관계 없이 '시간 여행'을 떠나야 하는 그에게 있어, 결혼식은 매우 불안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결혼식을 하다가도 언제 사라져 버릴지 모르는 노릇이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헨리'는 결혼을 앞두고 대기실에서 그만 사라져버리고 만다. 이에 관객들은 몹시도 긴장하게 되고, 과연 결혼식 전에 돌아오기는 하는 것일까 염려하게 되지만, 다행히도 그는 결혼식 직전에 다시 돌아와 정상적으로 결혼식을 치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새신랑의 머리가 희끗희끗한 것이다. 이것은 감독이 날리는 반전의 펀치다. 결혼식 직전에 사라졌다 다시 돌아와 결혼식을 치르는 그는, '현재의 헨리'가 아닌 '미래에서 온 헨리'이기 때문이다. 이어진 피로연에서 '미래에서 온 헨리'는 다시 사라지지만, 이번에는 '현재의 헨리'가 돌아와 정상적으로 결혼식을 마무리하며 관객들을 기만한다.

옥의 티) 시간 여행을 본인이 제어할 수 없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절묘하게 교차하며 나타날 수 있었을까? 이것도 운명이라 버틸 참인가?



2) 정관수술 후의 임신

'헨리'는 '클레어'가 유산 후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단 생각에, '불임 수술'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를 그는 '클레어'에게 고백하지만, 이는 더 큰 싸움의 빌미가 될 따름이다. 여기서 남자들은 '헨리'를, 여자들은 '클레어'를 더 이해하며 몹시도 안타까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레어'는 기여코 임신을 하고 만다. '헨리'는 분명 불임 수술을 받았는데, 바람이라도 피웠단 말인가? 그런데, 그녀가 임신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수술하기 전의 '과거에서 온 그'와 사랑을 나누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반전 포인트를 통해 감독은 관객들의 뒤통수를 또 한 번 후려친다. 그리고 그녀는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는데 성공하고야 만다. 


3) 그의 죽음과 재회

그는 미래로 '시간 여행'을 하던 중 그가 머지 않아 죽게 될 운명임을 알게 된다. 일전에도 어머니의 죽음을 막아보려 했지만 막을 수 없었던 그였기에, 그 역시 본인이 처한 죽음의 운명을 피할 수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이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 날을 준비한다. 하지만 '클레어'는 그와 다르다. 그를 구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관객들은 그들의 슬픈 운명에 안타까워 하지 않을 수 없지만, 관객들의 이러한 슬픔은 이내 곧 믿을 수 없는 기쁨으로 일순간에 바뀌게 된다. 감독이 준비한 또다른 반전이 관객들을 놀래켜 놓는 것이다. 죽음으로 영원히 볼 수 없게 될 것 같은 그들이었지만, 이번에는 '과거 속의 헨리'가 미래로 찾아가 그녀를 만나는 것이다. 때문에 관객들은 그녀가 헨리를 만나기 위해 초원을 달려오는 내내 벅차오를 수 밖에 없고, 그녀가 그의 품에 안기는 순간 눈물을 머금을 수밖에 없다. 반전의 효과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헨리의 죽음'으로 관객들이 흘리던 '슬픔의 눈물'은 '헨리와의 재회'에 따른 '기쁨의 눈물'로 바뀌게 되고, '기쁨의 눈물'로 바뀔 때의 관객의 심정을 계산한 듯, 버선발로 뛰어오는(?) '클레어'를 오랜 시간 비추며 애간장을 태운다. 



스릴러를 방불케하는 완벽한 복선


앞서 살펴보았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하게 한 '반전' 역시 그렇지만, 이 영화는 마치 스릴러를 방불케할 만큼 복선과 포석이 치밀한 영화다. 그 치밀한 복선의 세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헨리의 죽음

관객들은 아쉬워하였겠지만, 영화의 전개 상 '헨리의 죽음'은 꼭 필요한 장치라 할 수 있다. 그래야만 관객들을 극한 슬픔에 빠뜨릴 수 있고, 또 죽어서도 '시간 여행'으로, 이따금씩 다시 만나는 그들을 통해 '반전'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러한 그의 죽음을 잘 표현해내기 위해, '헨리'를 '하반신 불구'로 만드는 효과적인 복선을 설정하였고, 죽음 직전의 그가 '시간 여행'하는 모습을 미리 보여주어 '헨리'의 죽음에 따른 당황스러움을 미연에 방지하였다. 또한 '시간 여행을 하는 딸'이 그의 죽음을 미리 언급하게 하여 관객들의 충격을 최소화하기도 하였다. 자칫 간과하기 쉬우나 꼭 필요한 이러한 '복선'들을 사용함으로써, 이 영화는 그의 죽음에 대한 개연성을 확보하고 극적 재미를 배가시킬 수 있었다.



2) 헨리의 자식의 시간 여행

그럼 헨리의 자식이(태아마저도) 시간여행을 한다는 설정은 어떨까? 유전이라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유전'이라는 핑계만으로는 너무 '우연적'이라 하겠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감독은 딸이 태어나기 전부터, 부부를 비추는 화면에서 엑스트라마냥 '엘바(딸)'를 출연시켰다. 이를 통해 관객들이 언뜻언뜻 '엘바'의 모습을 인지하게 하여, '엘바'가 부모를 찾아 직접 '시간 여행'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녀 또한 유전적 요인으로 시간 여행을 한다는 황당한(?) 설정은 개연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는 곧 복선의 의미로 작용하게 된다.


3) 시간여행을 조절할 수 없는 아버지와 조절할 수 있는 딸


그럼 아버지는 '시간여행'을 콘트롤할 수 없지만 딸은 조절가능하다는 설정은 어떨까? '유전에 따른 진화'로 이를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이 역시 너무 '우연적'이다. 딸은 '시간 조절'이 가능한 이유를 '노래'에서 찾는데, '시간 여행'을 할 것 같을 때 '노래'를 하면 '시간 여행'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버지는 딸처럼 '노래'를 불러보지만 이를 막는데는 실패한다. 그런데 여기서 뭔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헨리가 어릴 적 교통사고가 나던 날, 그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던 장면 말이다. 그 때 헨리는 본인이 노래를 잘 못한다고 했다. 만약 '시간여행'이 유전이라면 '헨리' 역시 부모에게 이를 유전적으로 물려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렇지 않으니, 그렇다면 어머니에게 '시간 여행'에 대한 인자를 물려받았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의 어머니는 노래를 통해 시간 여행을 막고 있다는 것이 추론 가능하다. 그리고 이로써 '그의 딸이 노래로, 시간 여행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라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어머니의 노래는 그의 딸의 통제력에 대한 복선이 된다 하겠다.


4) 헨리의 죽음과 사냥

장인이 사냥을 좋아한다는 설정 역시 마찬가지다. 장인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던 그 날, 장인은 예비 사위에게 사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며 묻는다. 그랬더니 사위는 늘 쫓기며 살았기 때문에 괜찮을 것 같다며 자신의 처지를 언급한다. 하지만 결국 그의 죽음은 사슴으로 착각한 장인의 사냥 때문이었고, 이는 결국 헨리가 죽는 순간까지 쫓기는 삶을 살다감을 뜻한다 하겠다. 따라서 사냥을 좋아하는 장인을 설정한 것은 그의 죽음에 대한 복선이 된다 하겠다.

5) 신혼여행 시간 여행 후 반지

오랜 기다림 끝에 둘은 결혼에 성공한다. 그리고 신혼여행의 첫날밤, 신랑은 신부와 침대맡에서 사랑을 나누던 도중 '시간 여행'을 가버리는 봉변을 당한다. '시간 여행'의 특성 상 신체가 아닌 다른 물건들은 통과할 수 없기에, 그가 입었던 예복이나 예물반지는 모두 침대 위에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 때 신부는 떨어진 반지를 주워 그윽히 비라본다. 이는 그와 그녀의 결혼 생활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역시 '복선'이라 하겠다. <터미네이터>처럼 몸만 통과하는 '시간 여행'을 설정한 것은 어쩌면 이 장면의 의미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이상으로 살펴본 듯, 이 영화는 그 반전과 복선에 있어 마치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완벽한 인과 관계를 갖는다. 이토록 완벽한 반전과 복선은 어쩌면 이 영화의 감독이 스릴러 영화를 주로 만들던 감독이었다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기에 그는 '멜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스릴러 영화'를 만들 듯, 자칫 간과하기 쉬운 부분까지 톱니바퀴 맞추듯 꼼꼼하게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 여행에 대한 분석

우리는 '백투더 퓨처'라던가, '터미네이터'와 같은 영화를 통해,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이미 여러번 접하여 본 바 있다. 그런데, 이 영화 속의 '시간 여행'은 이러한 기존 영화에서 보아 왔던 '시간 여행'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우선 이 영화가 기존 영화와 다른 하나는, 이 영화의 '시간 여행'이 본인이 제어할 수 없는 '불가항적 여행'이라는 데 있다. 기존의 영화들은 본인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서 여행을 하고, 심지어는 그 시간과 장소까지 선택할 수 있지만, 이 영화에서 여행 당사자는 그 시간과 장소를 선택할 수 없을 뿐더러, '가고 말고'를 결정하는 선택권조차 부여되지 않았다. 때문에 이 영화의 시간 여행자는 도리어 여행을 거부하려는 듯한 모습까지 보이며, 많은 사람들이 기존 영화를 통해 시간 여행을 꿈꾸어 왔던 것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다.

이 영화가 기존 영화와 다른 또 하나는, '헨리'의 '시간 여행'이 특정 장소와 특정 인물들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여주인공인 '클레어'와 그 주변에 집중되는데, 이는 이 영화에서 '헨리'와 '클레어'의 사랑에 '운명성'을 불어넣는 아주 중요한 장치다. 본의 아니게 시간 여행하지만, 이 여행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다른 하나는 '시간 여행'을 마친 후의 태도다. 시간 여행을 마친 '헨리'는 영화 <터미네이터>가 그랬던 것처럼 벌거벗은 채 나타나지만, <터미네이터>의 시간여행자의 카리스마 있는 모습과 달리, 이 영화의 '헨리'는 도망가고 가릴 옷 찾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 이것이 한편으론 인간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고, 실소를 머금게 하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론 벌거벗은 채 나타나는 '헨리'의 미끈하게 잘 빠진 나신으로 말미암아, 이 영화가 많은 여성들의 환심을 사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이 영화의 '시간 여행'은 기존 영화에서 등장하던 '시간 여행'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점으로 말미암아, 이 영화의 '시간 여행'은 다음과 같은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된다.

첫째, '운명적 사랑'의 매개체가 된다. '클레어'에게 그의 '시간 여행'이 집중됨으로써, 그의 '시간 여행'은 '클레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둘째, '다툼과 갈등'의 매개체가 된다. '클레어'가 그를 꼭 필요로 하는 순간마다 사라짐으로써 이는 둘 사이의 다툼과 갈등의 원인이 된다.

셋째, '영원한 사랑'의 매개체가 된다. 그가 죽은 후에도 '시간 여행'을 통해 '클레어'를 만날 수 있게 되므로, 비록 죽었지만 영원히 만날 수 있게 된다. 


등장 인물 이야기

1) 대단한 배우 브래드피트

90년대에 그는 이미, 섹시한 남자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성공하였고, 이는 곧 그가 적당한 상업 영화만을 골라 찍어도 충분한 부를 누리며 살아가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하지만 그는 아이돌로 그치는데 만족하지 않았다. 진정한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 비상업적인 영화에 출연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작품성 있는 영화들을 까다롭게 고르고 훌륭한 연기를 펼친 후, 그는 비로소 진정한 배우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제작자로서 좋은 영화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출연할 작품을 고르듯, 깐깐한 안목으로 영화들을 골랐다. 이 작품 역시 그가 제작에 참가한 작품으로, 이러한 그의 안목이 빛을 발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 보는 안목은 역시나 탁월하였다. 이것이 공교롭게도 함께 개봉한, 그가 출연한 영화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이 더 없이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다.


2) 에릭 바나

알려지기로는 '에릭 바나'를 캐스팅한 것은 '브래드 피트'라고 한다. '트로이'라는 영화에 함께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인연을 쌓게된 그는, 제작자로 이 영화에 참여하면서 '헨리'역에 주저 없이 '에릭 바나'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에릭 바나'를 떠올리게 된 것일까? 물론 정답이야 '브래드 피트'가 알고 있겠지만, 나름대로 추정해보자면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이 영화는 어찌보면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와 많이 닮아 있다. 재회가 이루어지는 방식이 '혼령이냐?', '시간여행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죽어서 다시 만난다는 설정은 매우 흡사하다.

이런 점에서 <사랑과 영혼>이 20세기를 대표한다면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21세기를 대표한다. 따라서 '브래드 피트'는 <사랑과 영혼>을 그리워하는 20세기 팬들을 이 영화로 끌어들일 수 있는 미끼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한 '브래드 피트'에게 '에릭 바나'는 적임자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에릭바나'는 <사랑과 영혼>의 히어로인 '페트릭 스웨이지'와 너무나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패트릭 스웨이지'를 닮은 '에릭바나'를 기용함으로써, 그는 <사랑과 영혼>을 그리워 하는 90년대 영화팬들을 자연스레 이 영화로 흡수할 수 있었다.



3) 레이첼 아담스

'레이첼 아담스'는 이미 지난 94년 <노트북>이라는 영화로 멜로의 여왕으로 등극한 바 있다. 당시 그녀는 열정적인 키스신으로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었다. 그런데 '레이첼 아담스'가 출연했던 <노트북>과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멜로 영화라는 점에서 공통점도 있지만, 그녀의 역할이 완전히 상반되어 있다는 점에서 또다른 재미를 준다.

<노트북>에서 그녀는 '앨리'역을 맡아 도도한 여인의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그런 그녀에게 남자 주인공은 목숨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시간여행자의 아내>에서 그녀는 '클레어'역을 맡아 <노트북>에서와는 정반대로 운명적 사랑을 믿고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순정을 바치는 순정파로 등장하였다. 마치 망부석처럼 말이다.

이렇게 두 영화는 비슷한 영화이지만 전혀 다른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이 영화의 또다른 재미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마치며 

이 영화는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두 남녀의 운명적 사랑을 가장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재구성해 낸 작품이었다. '멜로 영화'지만 억지 감동을 짜내려 하기보다는, '스릴러 영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복선과 반전'을 활용하여, 구성적 테크닉으로도 깊은 감동을 구현해 낼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자주 만날 순 없지만 영원한 사랑을 하는 두 남녀를 통해, 같은 처지에 있는 커플들로 하여금 강한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었고, 연애의 이상과 현실이 교차되는 장면을 통해, 누구나 옛사랑을 떠올리고 화해할 수 있게 하였다.

브래드 피트의 안목이 무섭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어쩐지, 그를 존경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