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몹시 고프면서도 밥이 먹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별미를 먹어주면 좀 낫다. 별미를 먹고 나면 다음 끼니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밥이 먹힌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참으로 좋아하지만, 가끔은 영화를 보기 싫을 때가 있다. 발단과 전개 부분을 꿋꿋이 보고 있기가 힘들 정도다. 그럴 때는 역시 타란티노 영화가 제격이다. 그의 영화는 입맛을 돋군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영화는 별미와 다를 바가 없는 셈이다.
별미. 평소에는 맛볼 수 없는 매우 특별한 맛이다. 특별한 맛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체로 식재료가 다르고, 조리법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도 그렇다. 기존 영화와는 차별화된 무언가가 있다. 그렇다면 그의 영화가 차별화 되는 식재료와 조리법은 과연 무엇인 것일까?
성악설론자 타란티노
타란티노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그의 영화는 기존의 윤리나 도덕에서 벗어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기적 본성을 여과없이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할 때가 많다. 윤리와 도덕이라는 거추장스럽기만한 무거운 옷을 벗고서, '인간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그 벌거벗은 육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 벌거벗은 모습에 인간의 본성을 감추고자 하는 사람들은 몸서리를 친다. 사람이 어쩌면 저럴 수 있냐고, 비인간적이라고.....
이 영화(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서도 그렇다. 인간의 허식이 여과없이 드러난다. 꿋꿋이 유태인 가족을 숨겨주던 강인한 농부도 가족의 이익 앞에서 그들을 숨겨준 것을 실토하고, 나치를 소탕하겠다는 대의로 뭉친 집단도 명분 이상으로 잔인하다. 마치 그들은 명분보다는 살인의 재미를 만끽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처럼 보일 정도다. 독일과 연합군 사이에서 이중첩자 노릇을 하는 독일국민배우도 그렇고, 야비한 면모가 돋보이는 한스 대령조차 자신의 이익 앞에선 신봉처럼 따르던 조국을 배신한다. 이른바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 앞에선 이러한 선과 악이 한순간에 뒤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보면 타란티노는 어쩐지 '성악설론자'가 아닐까 싶다. 그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이기적이고 악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에, '성선설'로 인간의 본질을 포장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인간의 참 본질은 이런 것이다.'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그의 영화가 기존의 영화 문법을 벗어나 있다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기존의 영화가 인간의 양심에 대단한 전제를 깔고 있는데 반해, 이 영화는 애초에 양심 따위는 없고 도덕과 윤리라는 상식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그의 영화는 필요 이상으로 잔인하고, 배신이 난무하는지도 모른다.
타란티노 영화의 감상법 - 본능을 즐겨봐.
그런 의미에서 그의 영화는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주입된 윤리나 도덕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영화를 이성의 힘으로 보려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잔인함에 몸서리치고 비인간적이라 목소리 높힐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이 본디 그러한 존재임을 솔직히 인정하고 받이들인다면 그의 영화는 몹시 재미 있어질 수 있다.
이 영화는 이러한 그의 영화 중에서도 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영화다. 이 영화를 가리켜 오락성에 중점을 두고 만들었다는 타란티노의 말은 결코 허위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인간의 본성을 인정하지 않고 이 영화를 본다면 오락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그의 말이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고, 잔인한 영화, 미친 영화로 인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가 오락 영화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선 '이성, 윤리, 도덕'의 탈을 벗어버려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그래야지만 이 영화가 오락 영화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성과 윤리와 도덕의 탈을 벗어버리자. 그러면 이 영화의 진정한 참 재미를 맛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섯 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두 개의 구성
이 영화는 다섯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 작품이다. 이렇게 챕터로 구분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이 영화가 일반적인 영화와 달리 복합구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복합구성이란 하나의 이야기 속에 둘 이상의 사건을 다루는 구성을 말하는데, 이 구성은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 사용되기엔 조금 힘든 방식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영화는 책과 달리 일회적이고 순간적으로 사건이 진행되므로, 관객들로 하여금 그 줄거리가 다소 복잡해 보일 수 있고 이는 결국 관객들의 집중과 몰입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집중도를 흐트리기는 커녕, 도리어 호기심을 유발해내는 데 성공한다. 한 챕터 한 챕터별로 번갈아가면서, 한 번은 유대소녀 이야기를, 또 한 번은 비스터즈 이야기를 다루어 가며 병렬적으로 교차한다. 그리고 이렇게 교차되는 두 이야기는 마지막 다섯번 째 챕터에서 합쳐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산만해지지 않는 것은(이렇게 두 개의 사건이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다루어 지는데도), 서로 다른 두 이야기가 같은 공통 분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두 이야기의 공통 분모는 첫째 '나치'라고 하는 공동의 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공통의 적으로 말미암아, 두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지만 한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된다. 하나의 목적을 향해 두 이야기가, 방향을 마주한 채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둘째, 두 이야기는 모두 '복수'라는 코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첫번째 이야기는 여성에 의해 개인적 차원에서, 두번째 이야기는 남성에 의해 공식적, 집단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지만, '복수'라는 코드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정 부분에서 한 순간에,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는 기폭제 역할이 가능하였다.
따라서 이 영화 속에서 두 개의 사건이 제시되는 것은, 분명 이 영화를 복잡한 것으로 여겨지게 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공통 분모들로 인해 단지 '두 번의 발단과 두 번의 전개'를 거친 뒤 '하나의 절정과 하나의 결말'을 갖고 있는, 독특한 구성의 영화처럼 여겨지게 만든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러한 공통분모를 가진 것과는 반대로, 차이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는 튼실한 공통분모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질감을 유발하기보다는 호기심을 낳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차이점으로는 첫째, 첫번째 이야기(1,3 챕터)는 '스릴러'스럽고 두번째 이야기(2,4 챕터)는 '액션물'스럽다는 것이다. 따라서 첫번째 이야기가 고도의 심리전을 기반에 두고 있다면 두번째 이야기는 치고 박고 싸운다. 또한 두 번째 차이는, 첫번째 이야기(1,3 챕터)가 여성에 의해 은밀하면서도 계획적으로 복수가 진행되는 반면, 두번째 이야기(2,4 챕터)는 남성에 의해 단순하고 과격하게 복수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즉 이렇게 복수의 주체에 있어 나타난 차이가 복수의 유형에까지 영향을 미쳐 그 색깔까지 변별 짓는 것이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마치 한 영화 속에서 두 개 장르의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보색 관계에 있는 두 가지 색깔의 복수극을 통해, 2시간30분이라는 긴시간 동안을 지루하지 않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나치를 향한 유대인의 화끈한 복수극
헐리우드 자본이 유대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치의 유대인 학살 문제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영화 속에서 부각되는 듯하다. 이 영화 또한 그러한 유대인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인데, 유대인의 자본과 이 영화가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나치에 대한 유대인의 복수'는 유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시원하다 못해 통쾌할 지경이다. 나치 수뇌부들의 실명을 굳이 언급하고, 이미 알려진 역사적 사실까지 픽션으로 대치하며 복수한 것은 타란티노가 '유대인들의 복수'를 영화 속에서나마 제대로 대신해 주겠다는 비장한 느낌까지 들 정도다.
그래서 영화는 굳이 모든 나치의 원흉들을 한 바구니(극장)에 담아, 일거에, 짜릿하게, 분이 풀릴 때까지, 복수한다. 그것도 여성에 의해, 남성에 의해, 민간인에 의해, 군인에 의해, 그리고 충직한 부하의 배신에 의해, 여러 경로를 통해 처절하게 복수 당한다. 특히 히틀러가 사살 되는 장면은 그 복수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하다. 조만간 폭사할 그이지만, 그를 향한 기관총은 멈추지 않는다. 히틀러의 안면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사격을 해대는데 우리에게는 잔인해보일지언정, 나치에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지나치긴 하더라도 통쾌함 그 자체일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인과 비슷한 치욕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나라 영화 속에서 일본에 대한 복수를 다룬 영화가 있었던가 생각해 보면 그랬던가 싶을 정도다. 만약 있었다 하더라도, 그 제작 과정에서 외교 문제를 고려한 압력을 수도 없이 받았을 것이고, 그러다 제작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본이 강대국이라는 것은 명분이 될 수 없다. 나치의 본국인 독일 또한 일본 못지 않은 강대국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틈만나면 역사 왜곡과 독도 문제를 일삼는 일본에게 우리에게도 시원한 복수극이 될만한 픽션이 하나쯤은 나와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훌륭한 배우들과 놀라운 연기력
특별 제작된 포스터만큼이나 이 영화는 장난기 어린 만화적 분위기가 가득한 영화다. 이는 타란티노 특유의 장난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유대인에 대한 복수라는 진지한 주제를 보다 쉬운 방식으로 접근하기 위해 마련한 장치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앞서 언급한 바 나치에 제대로 복수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에서 벗어나 왜곡하고 과장하기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지한 방식으로 영화가 진행되었다간 논란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을 것이고, 따라서 다소 장난끼 어린 방식이 되어야지만 설사 논란이 벌어지더라도, 장난에 불과하다는 식의 해명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만화 주인공 같은 다소 과장된 연기를 베이스로 깔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이런 식의 연기는 대부분 적당히 오버액션만 하면 될 것 같지만, 이 작품은 유대인에 대한 복수라는 진지한 주제를 담고 있기에, 장난끼와 진지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결코 쉬운 연기라할 수는 없지만, 이 영화의 배우들은 이를 대체로 모두 훌륭히 수행해내었고, 그 중 다음의 배우들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한스 대령역 - 크리스토프 왈츠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배우를 꼽으라면 이 배우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지능적이고도 야비한 한스 대령역을 너무나도 잘 소화해내었다. 대체로 대사량이 많은 편인 쿠란티노 영화 중에서도 참으로 조용한 영화(?)인 이 영화에서, 그는 대사량이 가장 많은 배우이고 쿠란티노 특유의 지껄임을 이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표현해 내는 배우다. 굳은 의지로 유대인 가족을 숨기고 있는 프랑스 촌부를 고도의 화술로 무너뜨리게 하는 대사와 표정은 그야말로 압권이고, 손바닥 뒤집 듯 야비하게 변절하는 자의 뻔뻔스러움도 최고였다. 표정 변화가 많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미묘한 표정 연기로 그의 악마스러움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엘도 레인역 - 브래드 피트
그의 위상을 고려하면 이 영화의 이 배역은 차라리 맡지 않는 편이 나았을런지도 모른다. 껄렁껄렁한 역을 맡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해선 껄렁껄렁한 역을 맡더라도 보다 카리스마 있는 배역을 맡는 것이 그의 상품 가치를 더욱 신비롭게 포장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비단 이 영화뿐만이 아니라 출연하는 작품을 결정하는데 있어 자신을 상품으로 만들어 주는 영화를 고르기 보다는, 자신을 배우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작품을 고른다. 어쩌면 이것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가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쇼산나 드레이퍼스역 - 멜라니 로랑
큰 마음의 상처를 지닌 사람의 표정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그녀의 표정은 시니컬하고 단조롭다. 잘 웃지 않는 그녀의 무뚝뚝한 표정을 바라보며, 진짜 불운한 가족사를 지닌 사람의 표정은 저럴 것이다라 생각 되었다. 다른 것보다 불 타 사라져 버린 스크린 뒤로 원혼 마냥 흔들리는 그녀의 클로즈업이 무척 인상적이었고, 자신을 연모하는 독일 병정을 총으로 쏜 뒤, 잠시 흔들리는 표정은(물론 그 인간적인 고뇌 때문에 죽게 되지만) 그녀가 얼마나 연기 잘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내었다 하겠다.
마치며
2시간 3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을 전혀 지루하다 느끼지 않고 관람할 수 있었던 것은 앞 서 언급한 것처럼, 다섯 개의 챕터로 구성된 두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교차하며 빚어낸 공통점과 차이점 때문이었고, 장난끼 가득한 장면들 때문이었으며, 말그대로 처절한 절정부분의 화끈한 복수씬 때문이었다. 뛰어나다 못해 훌륭하다 여겨지는 연기력 높은 배우들의 연기는 그야말로 주머니를 뚫고 나온 칼 같았으며, 픽션까지 감행하며 펼치는 놀라운 복수극은 우리나라에도 일본을 상대방으로 이런 영화가 한 번쯤은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영화가 폭력적이고 잔인하며 이해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분이 있다면, 이성으로 제어되는 정신줄을 잠시 놓아보고 보면 이 영화가 보일 것이라는, 그야말로 정신줄 놓은 조언을 하고 싶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선한 존재이면 참으로 좋겠지만, 세상 돌아 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렇지 않다 여겨질 때가 너무나도 많기에, 인간이 본질적으로 악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면 세상 돌아가는 순리가 보이는 것 같기에, 그리고 타란티노의 영화는 세상 돌아가는 순리를 가식 없이 솔직하게 담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01. 영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2>, <해운대>는 <2012>에 감사해 하라! (8) | 2009.11.14 |
---|---|
시간여행자의 아내, 스릴러를 방불케 하는, 연인들을 위한 멜로 영화 (3) | 2009.11.11 |
[명장면] 김태희,이병헌의 키스신은 연기인가? 실제 감정인가? (0) | 2009.10.26 |
굿모닝 프레지던트 - 고단수의 수법으로 대통령의 권위를 무너뜨리다. (9) | 2009.10.25 |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장 조리장은 장진 감독의 분신이다! - 본편에 대한 사족 (2) | 2009.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