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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사는 이야기

나는 11월의 가을이 제일 좋다.




가을을 가리켜 남자의 계절이라 한다.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가을은 음의 시작이니 여자의 계절이어야 하는데 도리어 남자의 계절이라 일컫는다. 아무래도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쓸쓸함과 고독감을 여자와는 관련 짓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가을을 굳이 구분하자면 나는 그중에서도 늦가을을 좋아한다. 11월쯤의 가을이 좋다. 이쯤되면 슬슬 추워지기 시작하는데, 나는 추위에는 젬병 그 자체여서 살짝 거북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11월의 가을이 좋다.

 

9월과 10월의 가을은 산이 예쁘다. 울긋불긋한 자태가 산 전체가 꽃이 핀 것만 같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이게 웬 걸, 비틀어져 가는 죽음의 흔적 같아서 싫다. 나는 도시에 살고 있어 산을 볼 일이 그리 흔지 않으니 자연스레 9, 10월의 가을은 비틀어져 가는 기분일 수밖에.

 

하지만 11월은 다르다. 11월의 어느 날쯤 되면 가을비가 내린다. 그런데 그러고 나면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가을이 펼쳐진다. 내리는 비에 그동안 고개를 떨구던 잎사귀들이 하염없이 도시의 거리를 뒤덮는다.

 

수북히 인도 위를 뒤덮은 노랑, 빨강, 갈색이 좋다. 차창을 뒤덮은 채색들이 와이퍼에 쓸려가는 것이 좋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면 눈싸움하듯 그녀에게 쏟아도 좋다. 플라타너스의 큰 잎사귀들 가운데 섬처럼 홀로 놓여진 벤치에서 누군가와 추억을 이야기 해도 좋다. 빗물 떨어지는 테라스 딸린 커피숍의 처마 밑에서 빗소리와 함께 낙엽 떨어지는 것을 세고 있는 것이 좋다.

 

가을을 가리켜 남자의 계절이라 한다. 쓸쓸함과 고독함의 계절이라 한다. 남자들은 쓸쓸하고 고독하여도 이겨낼 수 있다는 뜻일까. 여자들보다는 덜 처량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들의 쓸쓸함과 고독함도 그다지 멋있어 보일만한 그것은 아니다. 지금 내가 그러하니 제일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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