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02. 음악 이야기

[명곡분석] 슬플 때마다 듣는 노래, < 이소라 - 바람이 분다. >


이 리뷰는 노래 가사에 따라 가사와 음악적 요소를 분석하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아래의 노래를 들으시면서, 가사를 짚어가시면서, 읽어 가시면 더욱 이해하시기 좋습니다. 

 

항상 이 맘때가 되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개인적으로 한참 힘들 때 듣던 노래라 그런지, 한 번 뇌리에 박힌 노래는 매년 이 맘때면 나를 찾는다. 그리고 슬플 때마다 내가 찾는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뮤직비디오를 수록하려 하였으나, 뮤직비디오가 도리어 노래의 운치를 죽이고 있어 이 자료로 대체합니다.>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도치법)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상징)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시각, 하강적 이미지)


'바람이 분다'라는, 나레이션하는 듯한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는 힘없이 내리치는 피아노와 함께 어우러져 모든 것을 잃은 여인의 아픈 심정을 잘 나타낸다.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여자의 걸음걸이와 정확히 일치하는 박자와 리듬이 더욱 처량한 느낌을 준다.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는 가사는 그녀의 정신적 공황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잘 표현해내고, 머리를 자르고 돌아선다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 심정적 동요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한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도치법, 활유법)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하강적 이미지)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의인법, 감정이입)

내게서 먼 것 같아(심적 거리를 표현)

이미 그친 것 같아"(대구법)

  

'하늘이 젖는다'에서 '코러스'가 덧붙고 '기타'가 덧붙으며 비가 내린다. '베이스'는 마치 짙게 드리우는 먹구름만 같고 흐려지는 그녀의 마음만 같다. '기타' 소리는 흩날리는 비가 되어, 쏟아지는 그녀의 눈물과 오버랩 된다. 그녀를 더 처량하게 만든다. 하필이면 어두운 거리가 더욱 쓸쓸하다. 누군가가 같이 울어주었으면 싶다. 다행히도 비가 내려, 하늘이 나와 함께 울어준다 여기려 하지만, 그 비도 그녀에겐 위로가 되지 않는다. 같이 울어주고 있지만 같이 울어 주지 않는다 여긴다. 이것이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던 비가 먼 것 같다, 이미 그친 것 같다'로 표현되고 있다. 실제로는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 부분의 '뚱뚱뚱뚱' 하는 '베이스'가 사람을 미치게 하며, 클라이막스를 준비한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대구법)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대조법)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시각)

애타게 사라져 간다"(시각)

  

체념을 한 그녀에게서 드디어 카타르시스가 터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자신은 어제와 다름을 대조적으로 나타낸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내 소원들이 애타게 흩어져 간다며 절규한다. 리드미컬한 드럼과 베이스가 여전히 울먹이는 그녀의 마음을 나타내고 스트링이 은은히 그녀의 카타르시스를 잘 표현해 낸다. '달라져 있다' 뒤에서 소리치는 기타가 어딘가 짠하다. 


"바람이 분다 시린 한기속에(도치법)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끝에 선 너의 뒷모습이(상징)

차가웠던 것 같아(촉각)

다 알 것 같아"(대구법)

 

또다시 바람이 분다. 차가운 기운 속에서 떠난 그를 떠올리지만, 그는 여전히 이별 전의 따뜻했던 모습 그대로다. 이를 그가 여름 속에 있다 표현한다. 그러나 이내 곧 그가 매정히 떠난 것을 떠올리며 따뜻했던 그의 모습이 그 때도 차가웠던 것 같다며 자위한다. 그의 모든 것이 가식이었음을 깨닫는다.

 

"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영탄법)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그녀는 그를 만난 후 설레하던 지난 날을 추억한다. 그리고 그의 모든 것이 가식이었다는 깨달음에 절규한다. 그녀는 이토록 슬퍼하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이를 그녀는 '내가 소중히 여기던 그 때도 그는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고 표현한다. 그에게 있어 그녀는 유혹하기 위한 대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는 그녀에게 처음부터 아무런 관심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단지 그녀 혼자만의 착각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대는 내가 아니다'라 한다. 그녀에게는 소중한 추억들이 그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적혀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 '다르게 적힌다'의 스트링은 다음의 폭발을 예비하며 감정을 고조시킨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그는 그녀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조차 없는 사람이다. 그것이 그녀를 더욱 비참하게 한다. 그 비참함을, 일상적으로 절규하는 말투와 똑같은 리듬으로, 더 높은 음으로 노래를 끌고 가며 표현한다. '인사도 없이'와 '치러진다' 사이의 기타 섹션은 그녀의 절규를 더욱 절규스럽게 만든다. '치러진다'에서 '다'는 개인적으로 한 3도 더 높은 음을 불러주었으면 싶지만, 이 음을 선택함으로서 도리어 감정을 절제하는 효과를 내어 더욱 애절하게 한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천금 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직유)

머리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 흐른다"

  

천금 같았던 추억...... 사랑에 버려진 사람들은 다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녀는 참담한 심경 속에서도 그녀의 추억을 천금 같다 여긴다. 그리고 바람이 불고, 눈물을 흘린다. 그동안 묵묵히 뒤에서 연주하던 스트링이 본격적으로 귓 속으로 파고들어 여인의 감정을 폭발케 한다. 가장 절정을 이루는 부분이다. 특히 '세상은 어제와 같고'에서 '세상은' 바로 뒤의 공백 뒤, '어제'의 '어' 바로 앞에서 아슬하게 따라 나오는 스트링 한 음이 전율을 느끼게 한다. '눈물이 흐른다.'의 앞에서 모든 악기는 뮤트되고 슬픔의 잔재가 여전함을 쓸쓸히 말한다.

 


마치며


가사, 리듬, 멜로디, 선율,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주제를 향해갈 수 있는 음악이 진짜 좋은 음악이라 생각한다. 이 노래는 '이별의 정한'이라는 주제를 향해 음악의 모든 요소가 한 방향으로 향한다. 너무나도 잘 만든 노래다. '작곡:이승환/작사:이소라'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공연 동영상을 하나 더 수록해 둔다.




글이 마음에 드셨나요? 그렇다면 아래의 손가락 모양을 꾹 눌러주세요! 추천해 주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