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05. 국어/문학/교육 이야기

한 아이의 죽음을 기억하며

아침자습시간이었다. 아랫층의 3학년 학생이 굳이 2학년 교실인 우리반까지 찾아와 묻는다.

"선생님, 손XX가 이 반이에요?"

최근들어 한 열흘째 학교를 나오지 않던 녀석이었다. 현재는 가출 상태..... 본능적으로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하였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우리반 아닌데, 근데 왜?"

그랬더니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아, 손XX가 오늘 새벽에 죽어서요. 오늘 학교 못 온다고 얘기하려구요."

태연한 목소리에 내가 더 놀랐다. 이에 내가 다시 물었다.

"갑자기 왜?"

"오토바이 타다가 차에 부딪혔다는데요."

 

키란
키란 by Sean Choe 저작자 표시비영리

사건의 전말은 대충 이랬다. 죽은 손XX는 선배인 정XX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좌우로 휘청거리며 질주하는 모션을 취하고 있었다고 한다.(폭주족들이 하는 그것이다.) 그러다 과도하게 핸들을 꺾은 나머지, 그만 넘어지고만 것이었다. 그런데 뒤따라 오던 차량이 넘어진 그네들 위로 질주하였고, 그 결과 손ㅇㅇ는 사망하고 정ㅇㅇ는 중태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정XX는 의식불명상태이고, 공교롭게도 상대차량 운전자는 음주 운전이었었단다.

 

그런데 그 태연한 말투가 마음에 걸렸다. 마치 몸이 아파 학교에 못나온다는 것을 알리는 전갈처럼 이야기하다니...... 물론 죽은 아이는 잘모르는 아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죽음 앞에서는 다들 관대해지고 숙연해지는 법 아니겠는가?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며 망설이듯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것을, 조금이라도 슬픈 표정을 지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설령 잘 모르는 친구라 했을지언정 그 말투가 못내 아쉬웠다.

 

하루만 장례를 치르고 다음날 화장을 한다고 했다. 결혼조차 하지 않은 사자(사자)에게는 삼일조차 허락이 되지 않나 보다.(여지껏 10대가 죽으면 늘 다음날 발인하더라.) 그래도 눈치를 보니 같은 학년 동기들 중에는 찾아가는 아이들이 꽤 있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럽다.


삶과 죽음의 공존
삶과 죽음의 공존 by jackleg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선배에게 중고로 구입했다는 D&G 시계를 차고 다니던 녀석이었다. 비 오는 날이면 시계 안 쪽이 늘 습기로 가득했던 까닭에, 짝퉁을 속아 산 거라며 놀리곤 했었다. 아마 그 시계도 마지막을 함께 했겠지.

 

사고 나기 전 열흘 정도 무단 결석 한 것은,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는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매일같이 나오던 녀석이 그렇게 되었다면 더욱 동요되었을 테니까.....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친구들이 자신을 더 쉽게 보내줄 수 있게 하는, 마지막 배려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착실하지 않은 녀석이었지만, 이천수 마냥 찢어진 눈매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