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첫 담임 시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담임으로 부임하기 직전, 애를 꽤나 먹이는 아이들일 것이라는 선배들의 말에, 나는 어느 정도로 엄격해져야 할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군에서 웬만큼 드센 놈들은 겪어본 적이 있기에, 고등학생쯤이야 자신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뭐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어 남들 눈에는 드센 녀석들일지언정, 나에게는 순한 양일 뿐이었지만..... 선배들의 엄포 덕에 50%의 힘만 들여도 됐을 것을 100%의 힘을 들였던 것 같아 괜시리 녀석들에게 미안해진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들고 설친 것 같다고나 할까?
그래도 그 덕인지 몰라도 우리반은 늘 최고였다. 우리반만 자퇴생이 없었고, 우리반만 지각, 조퇴, 결석생이 없었고, 시험만 쳤다하면 우리반이 늘 1등이었고 그랬다. 심지어 전교 1등부터 10등 사이에 우리반 녀석들만 7명씩 포진되어 있기도 하였다. 이러한 결과가 뒤따르자 나도 아이들의 성과에 힘입어, 아주 각광받는 교사로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이젠 녀석들도 졸업하고 한창 어른 흉내를 내고 다닐 때다. 봄처럼 지나가 버릴 스무살이라는 것을 그네들은 알고 있을런지? 녀석들이 스무살처럼 뜨겁게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기억의 단편들>
- 학교 소재지가 생활수준이 좀 괜찮은 지역이라 알려진 곳임에도 불구하고, 26명 정원에 21명이 학비지원을 받게 되어 깜짝 놀람. 도시의 화려함 뒤에는 그만큼 어두움이 많다는 증거.
- 양친을 모두 잃은 녀석이 있었는데, 늘 밝은 모습을 잃지 않고 명랑하게 지낼 수 있다는 점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었다. 더군다나 여학생이었다. 만약 내가 녀석의 처지였다면 그리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웬지 나는 그리할 자신이 없다. 사실 나보다 나았다. 긍정적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 지 되짚어 볼 만한 순간이었다.
- '메이플 스토리'라는 게임을 통해 장거리(?) 연애을 하던 아이. 게임서 벌어졌던 사랑 이야기를 노트에 빼곡히 적던 아이. 밥 사준다 하니 기뻐하다가 지갑을 안 가져온 사실을 이야기하자, 쉬이 토라져 돌아가 버리던 아이.
- 다소 까불기는 했지만 나름 멋진 척하려던, 반장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다른 아이들에게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녀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주문한 대로 행동하려 노력했었다.
- 그다지 남자답지 못한 나를, 남자다워 멋있다며 나를 특별히 따라주던 매니아를 만난 것도 큰 기쁨이었다.
-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다 여겼던 줄다리기 시합에서, 군에서 익힌 요령으로 승리하였을 때의 짜릿함. 말할 것도 없었다.
- 처음으로 병결자가 나와 기록이 깨지구나 싶었는데, 볼걸이(법정 전염병)으로 진단 받아 공결로 처리가 되어 무결석 기록을 이어 가기도 했었다.
- 학교를 그만둔다는 녀석을 어렵사리 설득하여, 매로 다스려가며 억지로 주저 앉혔다. 졸업식날 슬며시 '저 졸업한다는 약속지켰어요.'라는 말을 건네고 가더라.
- 녀석들은 내 생애 최고의 스승의 날을 만들어 주기도 했었고, 학생을 바로 잡기 위한 내 무모함이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어쩌면 그 녀석들 덕분에 내가 목숨을 보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그리운 이름들을 불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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